매년 한국의 학부모들은 11월 자녀 정시입시, 수시입지 준비로 덩달아 초긴장이다. 원로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때 논문을 썼다는 친구들은 부모들의 욕심으로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고 비판했다. 최근 법무부장관 후보 청문회 중인 한동훈씨 딸 논문 대필 이슈가 화제다.
고등학교 논문 가짜 천재들
서울대 이준구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 많은 천재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2000년대 초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갑자기 고등학교에서 논문을 쓰는 천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썼는데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 묻는다.
그는 이런 천재들이 성장해 학계를 이끈다면 우리 학문의 수준이 세계 최고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학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신이 서울대에서 가르쳐 온 학생들 중에서도 "이전 세대의 학생들과 비교해 천재스럽다고 느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준구 경제학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때 논문을 썼다는 친구들은 부모들의 욕심으로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고 비판했다.
현재 진행중인 청문회에서 법무부장관 후보 한동훈씨 딸이 쓴 논문에 대해 케냐 출신 대필작가가 작성했다고 직접 증언해 화제로 떠올랐다. 위 이준구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3장 분량의 습작 수준으로 입시 논문에는 활용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한동훈씨 또한 고등학생 딸을 가짜 논문 천재로 만들고 있는 장본인이다.
고등학생 경제학원론 저술 황당해
이준구 교수는 직접적인 개인적 사례도 폭로했다. 어떤 학부모로부터 고등학생인 자식이 '경제학원론'을 저술했으니 감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날고 긴다는 서울대 학생도 이해하기 힘들어 애를 먹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일개 고등학생이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저술했다니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제안은 단번에 거부했다고 했다고 한다.
현재 고3 학부모들은 자녀가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을 경험한다. 고2때 대학 전공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수시와 정시로 나뉘면서 반에서 50% 내외 학생들은 시간표를 따라 대학 정시에 해당하는 과목이 있는 날은 출석하고 없거나 거의 없는 날은 조퇴를 하거나 병가를 내거하 하면서 시간을 쪼개 정시 준비를 위한 공부시간 확보에 애를 쓴다.
말은 간단하지만 학생 입장에선 피곤하고 번거롭다. 학교 선생님들은 알면서도 허락한다. 입시 시험을 몇 개월 앞둔 학생들은 학교마다 규정 범위 내에서 조퇴하고 병가를 최대한 활용하다보니 교실은 자주 절반 이상 빈 자리가 흔한 풍경이 됐다. 왜 이런 괴이한 현상이 발생했는지 참 황당했다.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당연히 그렇게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준구 교수는 자신과 이전 세대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고교시절은커녕 대학생 때도 외국 저널에 논문 한 편 실어보지 못했다며, 논문이 스펙쌓기 수단으로 변질됐음을 지적했다. 이 교수 자신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변변한 논문 하나 써 본 적이 없다"며 "대학생활을 하면서 논문을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2000년대 초 수시전형 부작용
그게 우리 50대, 60대 전후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전 세대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 역시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논문 한 편 써낸 적이 없는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준구 교수는 이 같은 일이 2000년대 초 수시전형이라는 새로운 대학입시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라고 진단했다. 자신이 과거 새 입시제도 도입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강력히 지적했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며 성토했다.
결국 예측대로 고등학생들이 논문을 썼다고 나서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는 논문 집필을 스펙으로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전하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고등학교 때 논문을 쓰는 천재가 전혀 나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때 논문을 썼다는 친구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고 단언했다. "어린 학생이 스펙 쌓기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에 시달려 건전한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밝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늘 말하지만 그런 쓸모없는 짓에 매달리게 하지 말고 아예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인 일이 아닐까"라고. 정말 공감한다. 고3 딸을 둔 학부모로써 100번 1000번 지당한 말씀이다.
한동훈 딸 놀라운 논문 논란
한편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고교 1학년 때 지난해 6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한 후보자의 딸은 논문 중 3편을 11월, 2편은 2월에 작성했다. 11월에는 '기하학', '기초 미적분학', '세포 주기와 유사 분열' 등에 관한 4권의 전자책도 출판했다. 정말 엄청난 천재임에 틀림없다.
한 후보자는 이튿날 즉각 입장문을 내고 "장기간에 걸쳐 직접 작성한 고등학생 수준의 글을 마치 고등학생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의도적인 프레임 씌우기용 왜곡·과장이자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한동훈 후보자의 딸 논문 중 일부를 케냐 출신 대필 작가가 작성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해당 보도에서 한겨레는 대필 작가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조국 전 장관은 한동훈이 뱀처럼 교묘한 해명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한국의 입시제도와 환경은 예민하고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누구 때문인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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