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대통령 소설가 이외수씨가 투병중 76세 나이로 25일 별세했다. 참 별난 기인처럼 한때 방송활동으로 더욱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2014년엔 위암 2기를 수술로 회복했지만 지난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춘천성심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지난달 코로나가 겹쳐 중환자실로 옮겨졌었다. 고인이 된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정리해 봤다.
소설가 이외수 필모그래피
1946년 경남 함양 출생인 고인은 1965년 춘천교대에 입학한 뒤 8년간 다녔고 1972년 중퇴, 같은 해 강원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에 당선돼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었고 3년 뒤에는 중편소설 '훈장'으로 '세대'지 신인문학상 수상하며 정식 등단했다.
그후 장편소설 '들개', '칼', '장수하늘소', '벽오금학도' 등과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에세이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하악하악', '청춘불패' 등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이어갔다. 기발한 상상력과 언어적 유희는 그가 문단에서뿐 아니라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다. 트위터 170만 팔로워는 그의 거침없는 정치적 발언과 함께 큰 특징이다.
그는 또한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며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다. 고인은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밖에도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과 시트콤, 케이블TV, 광고계를 넘나들며 문화계 전반에서 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다.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는 그는 나름 재밌게 의미있는 삶을 몸소 실천했다.
졸혼 아내 다시 돌아와 간호
이외수 작가는 3년 전 졸혼(卒婚)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 지극정성 그의 곁에서 온갖 수발을 해 온 아내에게 돈 한 푼 안줘 세간에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졸혼 이유는 2013년 이외수 혼외자 문제였다. 혼외 자녀의 생모가 2억 원의 양육비 청구소송을 낸 것인데 아마도 서로 마음이 어려웠었나 보다. 이외수씨가 쓰러지자 아내는 졸혼을 중단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3년 후 올해 3월 초 코로나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아 중환자실에 입원한 그는 투병 중 25일 오후 8시께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는 춘천 호반병원장례식장이며, 오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발인은 29일, 장지는 춘천 안식원이다.
병원에서 보낸 투병 전까지 그는 강원도에 머물렀다. 경남 함양 외가에서 태어난 뒤 강원 인제군 본가에서 성장한 고인은 춘천에서 30여 년간 지내며 집필하다가 2006년 이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감성마을로 이주해 투병 전까지 지낸 걸 보면 강원도와는 인연이 깊은것 같다. 그의 아들 이한얼씨는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떠나셨다고 전했다.
아들 이씨는 아버지가 “‘존버’의 창시자답게 재활을 정말 열심히 하셨는데 여러분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게 너무 안타깝다”며 “지금이라도 깨우면 일어나실 것 같은데 너무 곤히 잠드셔서 그러질 못하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여러분들이 보내주셨던 기도가 사랑이 되어 가슴에 가득 채워졌을 테니 따뜻한 가슴으로 포옹할 수 있으실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글과 그림을 그리며 글과 그림으로 소통하고 세상을 향해 실컷 한소리 하다 이외수씨는 별고했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에서 산다. 누구는 즐겁게 누구는 고뇌하며 한평생 사는데 고 이외수 소설가는 누구보다 멋지게 살다가 별세하신 것 같다. 나도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쓴다. 수많은 무명인들 중 하나다. 나도 평안히 외롭지 않게 잠들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내가 어릴적 활동하던 문단의 열혈 불꽃들이 여럿이다. 최근에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박완서 소설가, 최인호 소설가 등 소설가 이외수님까지.. 세월엔 장사없다는 말이 점점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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