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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보

꼬꼬무 삼청교육대 일반인 피해자 제보 빗발

by 모아리뷰1 2022.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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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의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줄여서 꼬꼬무는 SBS 매주 목요일 밤10시30분 방송으로 지난 9일에는 43년 전 삼청교육대에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길거리에서 군인들에게 끌려가 무차별로 산골짜기 수용소에서 젊은 날을 희생한 무고한 시만의 이야기로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그 피해자들의 실상과 보상이 없어 사회적인 해결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삼청교육대의 끔찍한 가혹행위

 

9일 방송에서는 삼청교육대 피해자인 이승호(가명) 씨의 인터뷰가 공개됐습니다. 이 씨는 “아직까지 삼청교육대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며 운을 뗐습니다. 이곳은 전과자, 무기징역수,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의 소굴로 보통 인식되고 있습니다.

 

꼬꼬무 삼청교육대
꼬꼬무 삼청교육대

 

그러나 1980년 8월, '사회악 일소 특별 조치' 일명 '불량배 소탕 작전'이 발표됐습니다. 사회악을 제거하고 새 사람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 대대적인 홍보가 진행됐지만 명목은 불량배 소탕 작전이었으나 삼청교육대에 끌려온 인원의 40%가 전과가 없는 무고한 일반시민들이었다는 사실이 경악스런 일입니다.

 

저의 친동생도 신병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발령이 나서 울면서 가서 근무했던 곳으로 당시 삼청교육대에 수용된 인원은 4만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는 54명이며 돌아온 이들은 후유증을 호소하거나 ‘삼청교육대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방송에 출연한 이승호씨는 그 당시 생활을 말합니다. “돼지보다 못 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자,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고 복명복창해야 했고 그렇게 밥을 주고선 10초만에 먹으라고 했다. 먹는 게 아니라 넣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피해자 한일영 씨는 “우린 배고파서 남길 것도 없었지만 조교들은 남아서 버리곤 했다. 먹을 것을 더 달라고 호소하자 구더기가 들끓는 주방 짬통 앞에 데려갔다. 너무나 배가 고팠고 살기 위해 구더기가 있든 말든 먹었다. 그거라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끝없는 훈련 가혹행위 죽음의 공포

 

꼬꼬무 삼청교육대 방송을 통해 당시 그곳의 실상이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인권침해가 극심했는지 알려졌습니다. 

 

꼬꼬무 삼청교육대
꼬꼬무 삼청교육대

 

삼청교육대에서는 보통의 식사량의 삼분의 일만 제공했습니다. 식사량을 적게 주는 이유는 "공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육체적인 반발과 저항심을 줄이고 질서 유지에 대한 복종심을 키우고 본인의 과오에 대한 회개 속도를 증가시키면서 성공적인 귀화를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화장살 갈 때는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이마저도 단체로 가야 했습니다. 조교가 보는 앞에서 볼 일을 봐야 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야외 웅덩이에 둘러서서 소변을 보게 하는 비인간적인 일도 자행됐습니다. 이 웅덩이는 '지옥탕'이라 불립니다. 개구리를 그곳에 던진 뒤 교육생들에게 그 개구리를 잡도록 강제했습니다. 잠수까지 하게 했고 고개를 들면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매일 구타와 비인간적인 훈련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도 생겼습니다. 한 환자는 50대였는데 훈련이 너무 힘든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침대에 양쪽 팔을 묶어 놨습니다. 당시 의무병이었던 A씨는 그분의 풀어달라는 얼굴과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절절히 생생하다고 말했습니다.

 

 

4주간의 교육후 사회에서 낙인찍힌 삶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없이 강제로 끌려갔다 온 사람들은 4주간의 교육후 집으로 돌아갔지만 더욱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삼청교육대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불량배'라는 낙인이 찍혀 피해자면서도 고통의 삶을 살아야했다는 것입니다.

 

직장을 구하는 등 어떤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딸이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라며 물었을 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 한일영 씨는 아내는 "가해자는 국가인데 왜 당신이 숨어야 하나, 떳떳해져라"라며 삼청교육대 1년 형을 선고받았던 재판의 재심을 요구했고 4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꼬꼬무 삼청교육대
꼬꼬무 삼청교육대

 

방송에 어렵게 출연한 피해자들은 그 이유를 말합니다. "평생을 암울하게 살았다. 20살 청년 때 무죄판결이 나왔다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진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며 말했습니다. "나는 깡패도 아니었고 여러분과 똑같은 평범한 이웃이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크고작은 국가의 잘못 공무원 행태

 

사건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이러한 국가의 잘못으로 인해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크고작은 고통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어떤 영세 사업자가 경영난으로 폐업후 당해 법인세 신고조차도 돈이 없어 못했는데 2년 뒤 미신고로 인해 해당 세무소에서 당시 회사매출을 추계하여 8000만원이라는 세금을 개인 종합소득세로 징구한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 공무원의 안내에 따라 폐업후 미신고된 세금은 나라에서 정리한다며 수차례 확인을 받았는데 2년 뒤 당시 사업자를 세무소에서 세금체납자로 만든 것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신고했으나 2달후 행정신고를 하라는 통보만 내렸습니다. 자기네가 잘못 안내를 해놓고 무고하게 시민에게 책임을 전가시킨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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