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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보

이란 대통령 라이시 헬기 추락사고 사망 이유

by 모아리뷰1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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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라이시 헬기 추락사고 사망 이유
이란 라이시 대통령 헬기 탑승 모습

 

 

이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습니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이란의 개입으로 미국과 긴장감이 고도되면서 세계 경제계는 불안감 속에 금값과 환율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헬기 추락사고로 인해 라이시 대통령과 외무장관 9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SNS에는 가짜뉴스 영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란 대통령 헬기 추락 이유

이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63)이 지난 19일 탑승한 헬기 추락으로 사망했다고 로이터통신은 20일 공식 확인했습니다. 강경 보수 성향의 라이시 대통령은 2021년 8월 취임했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타브리즈 지역으로 돌아오던 중에 갑작스런 운명을 맞았습니다. 

 

이란 대통령 라이시 헬기 추락사고 사망 이유
이란 라이시 대통령 헬기 추락

 

 

라이시 대통령과 외무장관 9명이 탑승한 헬기는 짙은 안내과 폭우 등 악천후 속에 비행했습니다. 결국 이근 디즈마르 산악지대를 지나다 추락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사고 신고를 받은 이란 당국은 65개 수색구조팀을 급파했지만 악천후와 험난한 지형으로 사고현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갑작스런 이란 대통령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은 이란의 12명 부통령 중에 가장 선임인 모하마드 모크베르에게 승계됐습니다. 모크베르 부통령은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보궐선거를 준비합니다.

 

 

이란 대통령 사망 국제적 파장

갑작스런 이란의 사실상 2인자로 꼽혀온 라이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 전쟁에 직접 개입의지를 표명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함에 따라 이란은 내부 권력전쟁과 함께 중동 정세는 최근 히잡 시위와 경제난으로 민심이 흔들리는 가운데 다시 한번 파장이 일며 승계 과정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란 라이시 대통령 사망으로 국제적 파장이 가중됐습니다. 국제유가는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고 사고소식을 접한 미국 조바이든 대통령 등 서방국가들은 중동 정세와 유가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사고 직후 이란 당국은 물론 러시아, 유럽연압 등도 수색을 지원했습니다. 수색 도중에 날이 어두워지고 짙은 안개 탓으로 추락 지점을 찾기까지 12시간 이상이 소요됐습니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정치배경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으로 손꼽히는 강경파 성직자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집권으로 인해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전역은 보수파로 전격 변모했습니다. 그는 유권자의 지지가 약했음에도 여러 유명한 온건파 및 개혁파 후보들의 출마가 저지된 끝에 2021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란 대통령 라이시 헬기 추락사고 사망 이유
이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라이시 대통령 집권 당시 이란은 심각한 경제난, 세계 강국들과의 핵 협상 난항, 2022년 반정부 시위 그리고 지난해부터 이란이 지원하는 팔레스타인 단체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자 그림자 전쟁을 드러냈습니다. 

 

라이시는 시아파 전통에 따라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검은 터번을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15세 때 성지 쿰 지역의 신학교에 입학했고 서방의 지원을 받는 샤(이란의 국왕)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으며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주도로 촉발된 '이슬람 혁명'으로 존재감을 촉발됐습니다.

 

이후 1981년 사법부에 들어가 이란 대통령이 된 하메네이 직속 검사로 활동했고 25세 나이에 부검사직에 올랐습니다. 이후 그는 징역형을 받고 있는 수천 명의 정치인들을 재심하는 좌파성향의 야권단체에서 남녀 5천명 사형을 재판했습니다. 라이시는 이러한 정치범 사형선고와 자신은 연관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2016년 관련 녹음본이 유출되며 드러났습니다.

 

2019년 라이시는 도널도 트럼프 미 대통령에 의재 제재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 대선에 도전한 그는 강경파로 이뤄진 '헌법수호위원회'에서 다른 후보들의 자격을 박탈하면서 당선됐고 이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투표율 49%로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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